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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주소 https://vimeo.com/649217974
설교본문 요 1:12-13
설교자 구현진 목사 
설교일 2021-11-24

2021. 11. 24. 새벽 

거듭난 사람/ 요 1:12-13/ 261장, 359장/
 
진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거듭남'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출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육체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며,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육체적 출생과는 종류가 다른 신비로운 출생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태어나서 시간 속으로 들어올 뿐 아니라 다시 한 번 더 태어나 영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땅에서 태어날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태어납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출생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출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그것보다 우월한 것입니다. 영적 출생에 의해 태어난 사람은 지극히 특별한 권리를 얻게되는데, 이 권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거느리시는 권속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법적인 효력이 있는 공증 받은 권리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 권리보다 앞설수 없습니다.

이 특권은 천사들 조차 갖지 못하는 권리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처럼 신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권리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지위가 예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그 날이 되면 주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 특권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믿었고 영접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낙관적이고 겸손하고 신뢰하는 태도를 취하며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다라는 표현은 수동적인 단어가 아닌 능동적으로 쓰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수동적인 영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접하는 것을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다가 선심쓰듯이 영접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물건을 사주기를 학수고대하는 세일즈맨처럼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결정권이 자기들에게 있다는 착각 속에서 영접해줄지 말지를 고민합니다.

현대에 만들어진 영어성경을 보면 영접하다는 단어가 붙잡다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것은 선심쓰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인격을 쏟아붓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전인격을 투입하되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로 다시 요한복음 1장 12절을 풀어본다면 '전인격을 쏟아부어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은 주님이 제시하시는 어떤 조건이라도 따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들도 버리겠다는 각오까지 해야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 눅 14:26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족이나 자녀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때의 교훈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은 구원을 장식품이나 꽃다발이나 액세서리로 간직하라고 그러시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도 아니고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먹기 좋게 한입에 쏙 들어가는 말랑말랑한 종교가 아닙니다. 질긴 고기입니다. 어느 정도로 질기냐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실 정도로 질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쾌락을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토록 타락하고 암울한 시대에 교회들이 두마음을 품은 자들의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주기만 하면 전과 똑같이 살아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죠.

어중간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어중간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식탁을 두드리고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면 하나님이 오셔서 떠먹여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언가 일만 생기면 징징거리며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을 기독교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아는 것, 경험한 것이 진리의 전부인양 남들을 가르치려고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도 지적인 진리는 충만한 자들이었습니다. 1+1=2라는 당연한 것만이 진리의 전부라고 생각하고서 신앙의 깊이는 없는 진리를 믿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죠.

그들은 규칙이나 원리를 암기하는 것이 곧 진리를 아는 것이며, 진리의 말에 따라 사는 것이 곧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동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진리의 책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살아있는 책이고 하나님이 주신 책이며 성경의 내용에 가감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쓰여진 문자의 계시에만 치중하면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자의 계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자의 계시가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려면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을 손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도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문자의 계시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라는 진리를 확고히 붙들고 있지만 구원을 얻으려면 문자의 계시만으로는 안 되고 성령의 조명과 회개와 거듭남과 내적 구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속에는 택함 받지 않는 영혼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이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기독교는 언제든 손만 뻗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으려면 마음의 준비, 생활의 준비 그리고 속사람으로서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말했습니다.

즉 성령의 내주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수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아도 알지 못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충만을 날마다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말씀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십니다.

성경이 의미 있으려면 내가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리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죠.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깨닫게하시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머리로 많은 성경의 지식들을 알고 있어도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결심할 때 비로소 그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되죠. 내적 변화가 무엇인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이러한 내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의 믿음을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믿는 믿음 말고 삶에서 드러나는 진짜 믿음을 확증해야 합니다. 저급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내적 변화를 먼저 일으키고 그 변화를 통해 외적 변화까지 일으켜 그 영향력을 골고루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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