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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주소 https://vimeo.com/641683161
설교본문 딤후 3:1-5
설교자 구현진 목사 
설교일 2021-11-03

2021. 11. 3. 새벽 

얕은 믿음을 버리라/ 딤후 3:1-5/ 434장, 302장/
 
여러분은 말세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급변하는 시대, 급변하는 문화, 급변하는 사람의 생각 등.

이러한 시기를 살아가는 교회의 위험의 본질은 '얕은 믿음'인데 그것은 얕은 믿음이 영적 무감각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적 무감각에 빠진 교회는 원수의 무차별적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세상이 신자들에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므로 세상과 신자들 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주변 세상과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지 않죠.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면 영적 무감각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이 시대에 맞는 영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시대의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것은 왔다 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이 그것에 익숙해지면 유행만 따라가다가는 본질을 놓치게 되버리죠.

유행을 따르는 시대에서 신앙이라는 것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를 봐도 믿음은 세상과 조금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지만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나 세상의 방법을 따라 행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용품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있었던 모세는 산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큰 영적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많이 체험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 싫증을 냈고 결국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압도적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신앙적 권태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는 식의 계율을 잔뜩 제시하는 종교에 지친 사람들은 권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종교적 계율에 얽매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사소한 것들을 따지고 고민하느라고 지쳐버립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종교적 오락거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의 계획을 더욱 깊이 알기 원하는 갈망을 영혼 깊이 심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영양분을 공급하면 그것이 잘 자라기 마련입니다. 영적인 것에도 영양분을 공급하면 하나님의 일을 향한 열정이 우리 안에서 점점 커지게 됩니다.

성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가 아닌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만 빼고 다른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하나님께 어느 정도 싫증이 나 있으며 신나는 것이 어디 없을까 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다니느 고질병에 걸려 있는 것이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화려한 문명을 경험하며 살다보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쉽지 않고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렸고 바벨론의 세속적 영광에 압도되었습니다.

화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찬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공, 돈, 이벤트나 프로그램 등 우리가 즐거움을 얻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얻는 즐거움인지,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얻는 즐거움인지, 아니면 기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에서 얻는 즐거움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구분해야 합니다.

이제 잠에 취해 비몽사몽하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 51장 1절에는 '깰지어다 깰지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잠자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잠자는 사람은 무의식과 비슷한 상태이거나 반쯤 무의식에 빠진 상태입니다. 그의 감정과 사고는 매우 희미해져 있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잠자는 사람은 위험이 다가와도 불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인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영적 무감각에 빠지게 만들어 위험이 다가와도 불안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를 파괴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는데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깨우려고 애썼습니다. 사도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던 것처럼 영적으로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신앙은 당연히 퇴보하게 되죠. 신앙의 퇴보가 일어나는 데에는 두 가지 주된 원인이 있습니다. 먼저는 과거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최악의 상태에서 그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라는 부름입니다. 상태의 변화가 가능하기에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 선해질 수 있고, 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악했다 할지라도 지금 선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본능에 의지하면 믿음을 지속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신앙의 퇴보가 일어나죠. 신앙의 퇴보는 언제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가정 때문에,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질병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등등' 같은 핑계를 대면서 환경을 탓합니다. 그러나 환경은 외적인 요인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퇴보는 외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신앙의 퇴보가 일어난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흥미를 잃고 점점 옛날의 습관으로 돌아가거나 옛날의 죄보다 더 교묘한 죄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갑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가 싫어집니다.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환경에서 오는 것들은 마귀의 뜻을 이루도록 돕는 외적 요인일뿐, 신앙생활이 귀찮고 싫증이 난다면, 믿음이 뜨거운 그리스도인에게 싫증이 난다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신앙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따분해진다면 자신의 마음을 깊게 살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이 대화 주제로 떠오를 때 지루함을 느낀다면 당신의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에 선한 그리스도인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더이상 그분과 교제하지 않고 과거의 신앙의 열정은 식었고. 하지만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평판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맡겨지는 일에는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마음이 식었는데 그들이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과 신앙에 싫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마음은 이미 냉랭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4에서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책망하신 이유는 교회에서 신앙의 퇴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가면서도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식은 상태로 얼마 동안 지낸 사람은 공허한 간증으로 경건의 겉모양을 유지하는 것에 결국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경건한 사람들과 나누는 하나님에 대한 대화를 즐기는 척하는 것이 결국 지겨워집니다. 계속되는 교회 출석에도 싫증을 느껴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제는 결단할 때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생명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얕은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한 사람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합니다. 그런 사람은 영원한 운명을 고려하지 않고 선택합니다. 천국에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면 거룩해질 수도 없습니다.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라면 자유로울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자유로울 수 없다면 거룩해질 수도 없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야 죄를 지을 수 있듯이 자유로운 선택이 있어야 거룩해질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사람이 의로운 것을 선택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생명을 선택하려면 생명이 있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구원받기를 선택했습니까? 그렇다면 구주이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의 손에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구원을 얻으려면 회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입니다.

선한 선택을 하려는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이 없거나 완고하거나 도덕적으로 무감감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여러 선택의 갈래에서 여러분이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마귀는 치욕을 느낄 것이며, 당신은 승리의 삶을 살면서 봉사의 열매를 맺고 거룩한 품성을 기르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선택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영원한 운명을 좌우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선택을 매순간 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갈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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